http://blog.naver.com/it-is-law/220904272309
지난 포스팅에서 재해사망보험금 청구 승소사례를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보험사 측이 사고사가 아닌 병사라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지만, 사망진단서·간호일지 등 입증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고사 주장을 받아들인 재판부로부터 보험금 전액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낸 사건이었는데요.
이처럼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을 때 소송을 거쳐서라도 보험금을 받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까다로운 입증 절차와 소요기간, 불확실성 때문에 소송 자체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http://www.consumer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514644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위 사례처럼 계약상 보험금 지급사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지급사유에 해당한다하더라도 약관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고지의무 위반’입니다.
고지의무란, 보험계약 체결 전 보험가입자가 보험사에 자신의 병력, 직업 등 중요사항을 알려야하는 의무를 말하며, 보험표준약관에서는 이를 ‘계약 전 알릴 의무’라고 합니다.
상법 제651조(고지의무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는 “보험계약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에는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내에 한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자가 계약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험사의 질문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은 가입자의 책임이므로 일정 기한 내에서는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다만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의한 고지의무 위반이어야 하며 일정 기한 내에서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므로, 소송에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쟁점이 되곤 합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46512&ref=A
최근 보험가입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했더라도, 보험사가 정해진 기간이 지난 후 보험을 해지하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보험가입자가 의료실비 종합보험 가입 당시 고혈압약을 복용 중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 사안이었는데요.
재판부는 보험가입자의 고지의무 위반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보험사의 계약 해지 통보 시점이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을 넘은 후라면 상법상 효력이 없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제가 맡았던 사건도 위 판결과 아주 유사한 경우였습니다. 의뢰인은 암 진단을 받고 입원하여 수술을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하였지만, 보험사는 의뢰인이 가입 전 결절종 제거술을 받은 사실을 알아낸 뒤 고지의무 위반이라며 보험계약 해지를 통보했는데요.
보험사 측은 외부 손해사정업체로부터 고지의무 위반사실 보고서를 제출받은 뒤 1개월 이내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는 이유로 해지의 적법성을 주장하였으며, 1심에서는 이러한 보험사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의뢰인이 패소한 상태였습니다.
대법원이 “보험사의 보험계약 해지권 행사기간의 기산점으로 ‘보험자가 고지의무위반사실을 안 날’이라 함은 고지의무위반사실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때를 기준으로 하며, 구체적으로는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청구를 받고 보험사고에 대하여 손해사정업체에게 조사를 위임하여 손해사정업체가 조사를 마치고 그 보고서를 보험사가 받은 때에 비로소 고지의무위반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었기 때문에, 판례상으로는 보험사가 좀 더 유리한 입장에 있었는데요.
저는 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10년 전과 달리 최근 보험회사들이 고지의무 위반에 대한 자체적인 조사가 가능할만한 내부 손해사정사 인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보험자가 고지의무위반사실을 안 날'에 대한 기산점을 보험사가 손해사정업체로부터 보고서를 받은 날로 일률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면
모든 보험사고에 따른 보험금지급 청구에 대해 손해사정업체가 조사(손해사정)하는 것이 아닌데도 외부 업체에 대한 손해사정 위임여부와 손해사정보고서의 제출시점에 따라 그 기산점이 다르게 되어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펼쳤는데요.
예를 들어, 실제로는 내부 조사를 통해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후 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한 해지 통보라고 해도, 외부업체의 보고서를 받은 날만을 기준으로 1개월이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상법상 규정된 해지권행사기간을 도과한 해지청구가 가능하다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죠.
실제로 본 사건에서는 외부 손해사정사가 보험사 직원을 사칭하여 복사해간 진료기록을 통해 보험사가 고지의무위반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보험사는 이를 통해 보험금 지급 제한사유를 명백히 알 수 있었고, 실제로는 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는 점을 주장한 것입니다.
또한 저는 의뢰인의 고지의무 위반이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습니다. 의뢰인은 우연히 걸려온 보험가입 청약전화에 의해 본 보험에 가입하게 되었는데요. 보험사 측은 전화를 통한 문답과정에서 의뢰인이 수술 이력을 고의적으로 숨겼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죠.
저는 이에 대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문답과정에서 의뢰인이 수술 이력을 숨겼다고 볼 만한 명시적인 증거는 없을뿐더러, 물어보지 않은 CT촬영 사실까지 적극적으로 밝힌 점을 들어 고의 및 중과실이 없음을 주장하였고,
전화통화를 통해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고지의무의 대상과 범위에 관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음에도, 질문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답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뢰인을 말을 끊는 등 오히려 보험사 직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음을 주장하였는데요.
결국 재판부는 “1) 의뢰인이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증거가 없고, 2) 오히려 피고가 중대한 과실로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고 인정되며, 3) 손해사정보고서 등을 통해 원고의 고지의무 위반사실을 확정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로부터 1개월이 경과한 이후에 한 피고의 해지권 행사는 부적법하다.”고 판시하며 의뢰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보험사를 상대로 싸우는 건 분명 힘든 일입니다.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힘없는 개인은 마지못해 헐값에 합의하거나 한 푼도 못 받고 소송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는데요. 비록 두렵고 힘드시더라도 변호사의 조력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끝까지 찾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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