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2843276
올해 4월, 잊혀져가던 한 사건을 되새기게 하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지난 2011년에 벌어졌던 ‘고려대 의대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 중 1명이 성균관대 의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이었는데요.
아무래도 성균관대가 저의 모교인지라 더욱더 주의가 기울여지더군요.
당시 한 여학우를 집단 성추행한 혐의로 3명의 남학생이 1년 6개월~2년 6개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받았었는데요.
또한 고려대는 이들에게 출교 및 재입학 불가 처분을 내렸었죠.
그 중 주범이었던 박모씨가 2년 6개월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성균관대 의대에 진학하게 된 것인데요.
그의 과거가 드러나자 성균관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를 출교 조치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학칙상 마땅한 근거가 없어 성균관대 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 만약 명확한 근거 없이 그를 출교 조치했다면 이 또한 법리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http://www.ytn.co.kr/_ln/0103_201302100530020415
2013년 성폭력 범죄의 친고조항이 폐지되는 등 관련 개정 법률이 시행되면서 성범죄자 처벌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합의시에도 처벌이 가능해졌으며, 합의 등의 감형사유가 없다면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는데요.
사실 저도 고려대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사무실을 방문했던 의뢰인은 갓 스무 살을 넘긴 앳된 남학생이었는데요.
제 학창 시절에 몇 번 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의뢰인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평소 소주 한 병을 채 못 마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건이 벌어진 엠티 당일에는 유독 술이 잘 받더랍니다.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술자리 게임 벌칙 때문에 계속 마시다보니 평소 주량을 훨씬 넘겼는데요.
다음 날 잠에서 깬 의뢰인은 울고 있는 한 여학우(피해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침 그 옆에 있던 학우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한 시선뿐이었죠.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엠티 숙소 특성상 방이 따로 없다보니, 술에 취한 학생들은 하나둘씩 아무 자리에나 누워서 자기 시작했는데요.
만취해 잠이 든 피해자 옆에 눕게 된 의뢰인이 갑자기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며 입을 맞춘 것이죠.
추행의 정도가 심해지고 상황을 인지한 학우들이 이를 제지하자 의뢰인은 ‘미안하다, 실수였다.’는 말을 남기고 잠이 들어버렸다고 하는데요.
이를 알게 된 의뢰인이 피해자에게 처음 한 말은 ‘기억이 잘 안 난다’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실수였을까요.
분노한 피해자는 더 이상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준강제추행죄’로 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는데요.
형법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의 예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준강제추행은 강제추행과 동일한 법정형을 적용받는 것인데요.
형법 제298조(강제추행)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도 주변 증언에 의해 피해 사실을 깨닫게 된 상황이었으므로 무죄를 주장할 여지도 있긴 했지만,
수십 명 학우들의 증언이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감형사유를 주장하는 쪽으로 변호의 가닥을 잡았는데요.
우선 사건 당시 의뢰인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음을 주장했습니다.
심신미약이란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만취한 상태에서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를 말하는데요.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제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성범죄 양형에 있어서 주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추행의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다는 점 또한 동시에 주장했는데요.
문제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범죄도 여타 형사사건과 마찬가지로 합의가 주요감형사유인데요.
단단히 화가 난 피해자는 합의를 일체 거부했으며,
학우들이 보는 앞에서 성추행을 당해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다며 의뢰인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까지 제출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실형이 선고될 수 있는 중대한 상황에서, 일정 금액을 공탁하며 선처를 호소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다행히도 벌금형 선고를 받아, 실형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던가요. 선고 후, 만약 의뢰인이 피해자에게 건넨 첫마디가 달랐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사과에도 타이밍이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 처벌조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