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정당방위’라는 표현을 많이 봅니다. 예를 들자면, 주먹 몇 대 맞고 쓰러진 주인공이 고개를 들며 “나 맞았다. 이제부터 정당방위야.”라는 대사를 날린 뒤, 상대방을 처참하게 제압하는 장면을 들 수 있겠는데요.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적으로 정당방위가 성립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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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논란이 되었던 판결이 있었습니다. 바로 ‘도둑뇌사사건’이었는데요. 집에 침입한 도둑을 빨래건조대·허리띠 등으로 때려 뇌사상태에 이르게 한 집주인이 1심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사건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정당방위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이후 2심에서 집행유예판결이 내려졌고 대법원에서도 원심이 확정되며 수감생활은 면하게 됐지만, 끝까지 집주인의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집행유예라고는 하나 결국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죠.
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등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하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방어(방위)에 그쳐야하며, 공격행위로 이어지는 순간 정당방위 성립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지는데요.
특히 총, 칼, 골프채 등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한다면, 그간의 법원 판례상 정당방위 성립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제가 변호했던 의뢰인은 특수협박죄로 기소된 식당 주인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손님을 말리던 과정에서, 가스총을 이용해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요.
의뢰인은 제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가스총이라는 흉기를 이용하여 손님을 협박한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형법 제284조(특수협박)는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전조 제1항,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의뢰인이 실제로 가스총을 발사하지 않았고 피해자들도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만 이뤄진다면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는데요.
문제는 의뢰인에게 폭력전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피해자들이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지속적인 합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처음에 요구했던 합의금액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는데요.
따라서 저는 합의 없이 집행유예를 이끌어내는 데 변호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주장의 요지는, 의뢰인의 범행동기가 피해자들의 폭행 및 위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의뢰인이 처음부터 가스총을 꺼내든 것은 아니었는데요. 술에 취한 피해자들과의 실랑이 도중 의뢰인이 먼저 폭행을 당했고, 피해자들이 의뢰인의 아내에게 성희롱을 하는 등 범행을 유발한 상황임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의뢰인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가스총을 사용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의뢰인은 아내가 성희롱을 당하는 것을 보고, 집단 성추행 또는 강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 빠졌는데요. 혼자서 아내를 구해야한다는 의무감이 가스총을 꺼내든 계기가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건이 벌어진 시각은 늦은 새벽이었습니다. 싸움을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해 줄 다른 손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혼자 다수의 피해자들을 상대해야했고, 간신히 빠져나온 아내가 경찰에 신고한 후에야 겨우 상황이 종료된 것이죠.
의뢰인은 사건 직후 경찰서에 총기를 자진 반납하는 등 적극적인 반성 태도를 보이며 선처를 호소했는데요.
결국 사건 발단을 제공한 쪽이 피해자라는 점을 적극 감안한 재판부로부터,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형사사건에서 합의는 주요 양형기준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거액을 합의금을 요구받아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변호사의 전문적인 법리 주장을 통해 실형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면해야 할 것입니다.
< 처벌조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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