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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경찰청 직원으로 인증한 사용자가 살인예고 글을 게시한 지 하루 만에 붙잡혔다. 당사자는 경찰관이 아닌데도 해당 계정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사용자 사이에서는 사건 자체보다 '블라인드 익명성'에 대한 불안감이 감지된다. 이번 사건과는 결이 다르지만, 내부고발성 게시글 작성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대는 살인예고 글을 게시한 30대 회사원 A씨를 22일 오전 8시 32분께 서울 시내 주거지 인근에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1일 오전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경찰청 게시판에 '오늘 저녁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칼부림한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린 혐의(협박)를 받는다. A씨는 현직은 물론 전직 경찰관 출신도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계정을 취득한 경위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다. 계약직이나 퇴사자의 블라인드 계정을 구매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
경찰청 직원 계정 살인예고 게시글은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됐다. 하지만 캡처 형태로 온라인에 급속도로 퍼져 시민들의 불안을 키웠다. A씨는 과거에 같은 계정으로 '누드사진 찍어보고 싶은 훈남 경찰관인데'라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대에 직접 수사를 지시했고, 게시자를 추적해 하루 만에 신원을 특정해 검거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블라인드 경찰청 게시판에 가입해 글을 올린 경위를 추궁하고 있다. 공무원 자격 사칭죄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검거로 블라인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찰이 게시글 작성 하루 만에 작성자를 특정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는 그동안 해외에서 서버를 운영해 국내 수사기관의 강제수사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경찰은 범인 검거 경위와 수사 과정에 대해선 '수사 기밀'이라며 함구하고 있다.
살인예고와 같은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는 사용자는 처벌받아야 하지만, 사내 비위를 제보하는 글 역시 명예훼손으로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30대 회사원 백 모씨는 "당연히 잡혀야 할 사람이 잡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내가 회사에 관해 쓰는 부정적인 내용들 역시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40대 공무원 정 모씨 역시 "익명에 숨어 배설물 같은 게시글도 많이 올라오곤 하지만, 반대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고발글도 많이 본다"면서 "이런 작성자들을 지켜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측은 "사용자 익명성은 여전히 완전하게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가입할 때 사용하는 인증용 직장 이메일 주소는 여러 단계로 암호화를 거쳐 어떤 데이터인지 알 수 없도록 변형된 뒤 별도 서버에 저장된다고 한다. 본사에서도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2021년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당시 블라인드에 "꼬우면 이직하든가"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작성자는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 당시 LH가 이 작성자를 명예훼손·모욕·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회사 관계자는 "수사당국의 협조 요청에는 본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직원 계정의 살인예고 글 역시 블라인드가 아닌 다른 메신저 서비스 이용 내용을 통해 수사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블라인드 내 다른 게시글에서 타 메신저 '오픈채팅방' 링크를 걸고 다른 이들과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경우 사용자의 인터넷규약주소(IP)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자세한 수사 경위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영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