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상담사례입니다. 의뢰인이 아버지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던 중 과속하던 다른 차량과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 두 운전자 모두 다친 곳은 없었지만 문제는 의뢰인이 운전한 차량이 의무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사고를 낸다면 11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형사처벌을 받지 않지만, 무보험운전자가 사고를 낸다면 의무보험 미가입으로 인한 처벌과 함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처벌까지 받을 수 있죠.
이 사실을 알게 된 상대방이 합의를 요구해 왔고, 주장을 입증할만한 블랙박스마저 없었던 터라 꼼짝 없이 처벌 위기에 놓인 그는 결국 민·형사상 합의금 500만원을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사합의가 이뤄지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은 합의여부에 관계없이 진행됩니다. 다만 위의 사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특례조항에 의해, 피해자 의사(합의)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도록 정한 것뿐이죠. 즉, 형법상 무거운 죄를 지었다면 합의했다고 해도 실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사건 피의자(피고인)에게 합의가 중요한 이유는 주요 감형사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합의를 할 때 피의자(피고인)가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처벌불원서’를 받아 판사에게 제출하는 것이죠. 이런 경우 형사처벌을 온전히 면하지는 못하더라도, 형량이 줄어들거나, 실형에서 집행유예가 되거나, 수사 단계에서 기소가 유예되는 등 감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요구액을 감당하지 못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피해자가 전혀 응하지 않고 처벌만을 원한다면, 결국 합의서(처벌불원서)를 제출하지 못한 채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죠.
다만 이런 경우에도 ‘공탁 제도’를 두어 ‘피고인이 합의 의사가 있고, 그에 상당하는 금원을 공탁한 점’을 참작하여 감형해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공탁’이란, 금전이나 이에 해당하는 물건을 법원에 임시로 보관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사사건에서의 공탁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 지급을 위한 것으로서, 피해자(채권자)가 돈을 받기를 거절하거나 그의 소재가 불분명할 경우 갚을 의사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공탁을 말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피고인이 낼 수 있는 합의금을 법원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정상참작을 바라는 것이죠.
피고인(공탁자)이 공탁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은 공탁통지서를 피해자(피공탁자)에게 발송합니다. 피해자(피공탁자)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공탁금을 수령할 수도 있고, 수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형사사건에서 공탁을 할 때에는,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공탁금을 회수하지 않기로 하는 ‘공탁금 회수 제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피공탁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고인(공탁자)이 임의로 공탁금을 회수할 수는 없습니다.
형사사건에서 합의는 실무상 가장 큰 감형사유입니다. 피의자(피고인)로서는 합의를 통해 감형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되,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공탁을 한다면 감형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